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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Newsletter] 세종솔로이스츠와 작곡가 강석희

2025.06.25

 

세종솔로이스츠 실내악 시리즈

베토벤과 강석희, 그리고 진은숙

2025. 06. 28 (토) 2 PM ㅣ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세종솔로이스츠와 작곡가 강석희

글 이희경 (음악학자, 『강석희와의 대화』 저자)

작곡가 강석희

 

한국 현대음악사에서 강석희의 존재는 각별하다. 그가 196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자음악 <원색의 향연>을 발표한 선구자이자, 1969년 한국 최초의 현대음악제를 주도한 개척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개인의 예술적 성취를 넘어, 음악제 조직가이자 교육자로서 그는 한국 현대음악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인물이었다. 20년 넘게 이끌었던 ‘Pan Music Festival’의 ‘Pan’은 오늘날 ‘범(凡)’음악제로 불리지만, 본래 ‘판을 벌린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강석희는 새로운 판을 짜는 기획자이자,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열어간 작곡가로서 한국 음악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강석희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1960년대는 한국 음악계의 제도와 기관이 형성되며 근대화와 현대성의 화두가 사회 전반을 관통하던 시기였다. 해외 정보가 극히 제한된 열악한 황경 속에서, 당시 30대였던 강석희는 1967년 동베를린사건으로 붙잡혀 온 윤이상을 찾아가 배움을 청했다. 유럽 현대음악의 본고장에서 10년간 활동해온 윤이상은 그에게 나라 밖 최신 흐름을 전해줄 수 있는 생생한 창구였다. 윤이상과의 만남을 계기로 독일 유학길에 오른 강석희는 그곳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개척해가는 한편, 세계 현대음악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미래 음악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79년 발간된 음악 산문집 『세계음악의 현장을 찾아서』는 1970년대 그의 경험과 지적 여정을 담아낸 소중한 기록이다.

예술가란 ‘남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험한 정글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존재’라고 믿었던 강석희는 언제나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자세로 음악에 임했다. 1966년부터 2017년까지 반세기 동안 80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에는 한국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예불>(1968)이나 <농>(1970), <부루>(1976)나 <ᄃᆞᆯᄒᆞ>(1978) 같은 곡들도 있지만, 음들의 정교한 조합으로 직조한 관현악곡 <카테나>(1975)나 <피아노협주곡>(1997), 전자음향을 활용한 <항변>(1984)처럼 추상적인 음향 구조를 탐구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전자음악의 개척자답게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 점화 음악으로 발표한 전자음악 <프로메테우스 오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국악기를 위한 곡들, 실험영화 음악, 다양한 연주 단체의 위촉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특정한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고 폭넓고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60대에 펴낸 책『나는 음악을 설계하는 작곡가』(1998)에서 드러나듯, 강석희에게 작곡은 음악적 상상을 논리로 풀어내는 일, 곧 냉철한 이성에 뿌리를 둔 창작 행위였다. 그는 예술의 본질이 이상을 추구하며 세상을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데 있으며, 완성도 높은 작품일수록 인간의 심성을 고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작곡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자기완성을 위한 행위이기에, 시대를 앞서가는 창작 정신이야말로 작곡의 참된 이유라 여겼다. 이런 그의 창작관은 말년에 이르러 세종솔로이스츠와의 협업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며, 그의 작품 세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2016년 UN본부에서 강석희 <평창의 사계>를 연주하는 세종솔로이스츠

2006년, 세종솔로이스츠는 70대 노작곡가 강석희에게 제3회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초연할 신작을 위촉했다. ‘평창의 사계’를 주제로 한 그해 음악제에서는 비발디와 차이콥스키의 <사계>,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와 함께 강석희의 <평창의 사계>가 초연되었다. 이후 이 작품은 파리, 런던, 베이징, 뉴욕 등 세계 주요 공연장을 누비며 세종솔로이스츠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평창의 사계>는 2009년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시리즈 ‘옛것과 새것’ 공연에서도 연주되었고, 2017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과 세종솔로이스츠 명예이사장 김희근의 공동 위촉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이 작곡되어, 다니엘 조의 파리 리사이틀에서 초연되었다. 또한 2021년 강석희 타계 1주기를 맞아 세종솔로이스츠는 서울대 STUDIO2021와 함께 헌정 음악회를 열었으며, 이 공연에서는 초기작 <원색의 향연>과 <예불>, 가야금 곡 <다섯 개의 정경>과 전자음악 <프로메테우스 오다>를 비롯해 세종솔로이스츠가 위촉한 두 작품이 연주되었다.

클래식 레퍼토리에 기반을 두면서도 작곡가들과의 협업과 신작 위촉을 통해 현대음악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연주 단체들은 적지 않다. 이들은 탁월한 연주력과 해석력, 대중성과 신뢰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고 널리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1997년 라트비아 출신 기돈 크레머가 발트 3국 음악가들과 함께 창단한 ‘크레메라타 발티카’가 고전 레퍼토리와 함께 아르보 패르트, 기야 칸첼리 등 동시대 작곡가들과 긴밀히 협업하며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가 된 것처럼, 1994년 바이올리니스트 강효 줄리아드 교수 주도로 한국을 중심으로 창단된 ‘세종솔로이스츠’ 역시 그러한 소명을 자처했다. 세종솔로이스츠가 주최하는 음악축제 이름이 ‘Here and Now’를 의미하는 라틴어 ‘힉 엣 눙크!(Hic et Nunc!)’이듯, 이들은 ‘지금 여기’의 동시대 음악에도 깊이 천착하고 있다.

세종솔로이스츠에게 강석희의 작품은 한국 현대음악의 정체성과 예술적 깊이를 상징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평창의 사계>는 동시대 창작곡을 발굴해 세계무대에 소개한 대표적 사례로, 한국 현대음악의 위상을 높이고 예술적 정체성과 혁신성을 드러내는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다. 강석희 서거 5주년을 맞은 지금, 그와 세종솔로이스츠의 협업은 한국 현대음악사의 의미 있는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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