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황무지』(1922)가 엘리엇의 초기시를 마무리한다면 불과 장미의 합일을 그리며 끝나는 『사중주 네 편』(1943)은 그의 후기시의 정점이요 종착점이다. 『사중주 네 편』이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15번 A단조, 작품번호 132번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스펜더에게 보낸 1931년 3월 28일자 편지에서 엘리엇은 자신이 이 작품에 얼마나 심취해 있는지 말하고 있다. “저는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15번 A단조, 작품번호 132번을 축음기에 올려놓았는데 탐구할 것이 끝없이 나옵니다. 그의 몇몇 후기작에는 천상의 희열 또는 적어도 인간의 희열을 초월하는 것 같은 그 무엇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사중주에서 엘리엇이 감지했던 것은 “큰 고통을 겪은 후에 주어지는 화해와 안도”였고 이는 하나의 예술적 소망으로 이어졌다. “저도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 비슷한 것을 시로 남겨 놓고 싶습니다.” 청력을 잃고 심각한 병까지 앓다 회복한 베토벤의 음악은 파탄에 빠진 결혼과 아내에 대한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던 엘리엇에게 하나의 예술적 지향점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고통에서 피어나는 희열이라는 큰 주제는 구도자의 기질을 가진 엘리엇을 자기 자신과 인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길로 이끌었다. 『사중주 네 편』은 시간의 개념을 중심으로 그것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기억과 역사에 대하여, 그리고 죄와 믿음에 대하여 깊게 사색하는 긴 연작시이다. 그러나 『사중주 네 편』을 쓰겠다는 계획 하에서 이러한 성찰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1936년에 『번트 노튼』이 나왔을 때 아직 『사중주 네 편』은 엘리엇의 머릿속에 없었다. 1939년 9월에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엘리엇은 『번트 노튼』의 구성을 염두에 두고서 『이스트 코우커』(1940), 『드라이 샐베이지즈』(1941), 그리고 『리틀 기딩』(1942)을 차례로 써서 발표하였고, 결국 넷을 하나로 묶어 음악적 비유를 내세우는 『사중주 네 편』이라는 연작시로 만들었다. 첫 번째를 제외한 세 작품은 ‘전시 사중주’라고도 하는데 시 창작의 시대적 배경이 전쟁의 고통과 혼란 그 자체였다. (소방감독관으로 자원했던 엘리엇은 주 1회 자신이 근무하던 출판사의 옥상에서 독일의 야간공습으로 런던이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 밤을 지새웠다.)
엘리엇의 네 편의 시 『번트 노튼』, 『이스트 코우커』, 『드라이 샐베이지즈』, 『리틀 기딩』
『사중주 네 편』을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15번 A단조, 작품번호 132번과 나란히 놓고 살펴보면 전술한 바와 같은 정신적 지향점 이외에도 구조가 비슷하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가 다섯 악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네 번째 악장이 다른 악장들에 비해 확연히 짧은 것처럼, 엘리엇의 네 편의 시도 하나같이 5부로 나뉘어져 있고 전환점으로 기능하는 4부가 현저히 짧다. 사실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이미 이러한 구조를 선보인 바 있지만 『사중주 네 편』에서 동일한 구조가 반복되는 것은 다분히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15번 A단조, 작품번호 132번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시의 음악」(1942)에서 엘리엇은 시인이 음악의 여러 요소들 가운데 특히 구조로부터 배울 수 있으리라고 말하는데, 이는 시와 음악의 구체적 또는 미시적 상응관계보다는 큰 맥락에서의 유비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오페라하우스가 아니라 콘서트룸”에서 “시의 배아에 활기가 불어넣어질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특히나 흥미로운데 성악이 아니라 기악에서 시의 영감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콘서트홀”이 아니라 “콘서트룸”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교향곡이 아니라 현악 사중주와 같은 실내악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기악을 강조하는 바로 이 대목에서 『황무지』에 들어가 있는 바그너의 성악곡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시인 프로스트는 비유가 작동을 멈추는 지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시공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중주’로 베토벤과 엘리엇을 포개어 이해하려는 우리에게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 고통에서 피어나는 희열과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지는 구조의 공통점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사중주’라는 비유를 기점 삼아 어떠한 유사성 또는 영향관계를 포착할 수 있을지 신중함과 용기 둘 다 필요한 미지의 여정이 펼쳐져 있다.